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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침몰의 진실과 가장 유명했던 희생자 7인

세계뉴스

by Tanyo 2019. 5. 2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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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를 기억하시나요? 잭과 로즈의 로맨틱한 사랑이야기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안겼던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졌던 여객선입니다. 

 

1911 화이트스타사에서 제작했던 타이타닉호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유명했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타이타닉은 누구나 한번 쯤 타보고 싶어할만한 배였으며 미국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눈부시게 화려했던 여객선 타이타닉 호에는 E.J 스미스 선장과 승무원, 승객 모두를 합쳐서  2,224명이 탑승했었습니다. 

 

 

실제 타이타닉 호의 선장 애드워드 존 스미스와 선원들의 모습

 

“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고 광고하며 절대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타이타닉호는 안타깝게도 첫 항해를 떠났던 1912년 4월 15일 밤 11시 40분 빙산에 부딪혀서 침몰했습니다. 망원경의 열쇠가 인계되지 않은 채 항해를 시작한 타이타닉 호의 감시원은 육안으로 바다를 감시할 수밖에 없었고 육안으로 빙하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배를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는데요. 빙산에 의해  타격을 입었던 타이타닉호는 2시간 40분에 걸쳐서 침몰했으며 새벽 2 20분에  전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출항 전 실제 타이타닉 호의 모습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지금까지도 해양 역사상 가장 유명한 비극으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영국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항해 도중 뉴펀들랜드 해안에서 침몰했던 타이타닉호는 호화로운 여행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배에는 당시 유럽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부유했던 부자들, 높은 신분의 귀족  수많은 부유층의 사람들이 탑승했다고 합니다. 

 

 

실제 생존자들의 모습

65인승 구명보트가 20척이 있었지만 모든 탑승자를 태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고 합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어떤 구명보트에는 정원의 반도 안되는 13명이 탑승한 채로 탈출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배가 침몰한 구조를 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구명보트에 매달려 구조를 요청했으나, 그들이 무게로 인해 구명보트마저 가라앉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승무원들은 외면했고 무려 1500 이상의 사람들이 영하의 차가운 물 속에서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바다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성들이었으나 그 중에는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3등실의 여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저체온증으로 30 이내에 모두 사망했으며  1,519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705명이 생존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타이타닉 호의 침몰로 인해 목숨을 잃은 가장 유명했던 12명의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1.  백만장자  제이콥 애스터(John Jacob Astor, millionaire)’

제이콥 애스터는 명망높은 애스터 가문의 사람이었으며 스페인미국 전쟁의 참전용사였습니다. 또한 미국의 사업가이자 부동산 개발업자, 투자가, 발명가, 공상 과학소설을 쓰는 작가 였다고 하는데요. 애스터(47) 자신의 어린 아내 매들린(17) 임신했을 함께 유럽여행을 갔었는데 출산일이 다가오자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는 타이타닉 호에 탑승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를 목격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애스터는 부서진 나무조각에 매달려 있었다고 하는데요. 끝내 보트에 탑승하지 못했던 그는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그의 아내 매들린과 뱃속의 아이는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애스터는 당시 87만7천 달러(오늘날의억1천만 달러)의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타이타닉호 탑승자 가장 부유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2.  타이타닉호의 건축가 토마스 앤드류스(Thomas Andrews, architect of the Titanic)’

토마스는 평범한 타이타닉의 희생자가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타이타닉에 공을 들였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였는데요. 그는 타이타닉 호의  항해에 대한 감독과 개선점을 체크하기 위해 탑승했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토마스는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힌 순간 배가 침몰할 것을 확신했다고 하는데요. 사고 즉시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갑판 위에 있었으며 물 속에 빠진 사람들에게 물에 뜰만한 갖가지 물건을 던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39세의 젊은 조선사, 토마스의 관심사는 오로지 승객의 안전이었다고 합니다. 

 

 3.  메이시스(Macy’s) 공동 소유자이시도르 스트라우스와 그의 아내 아이다(Isidor Straus, co-owner of Macy’s  and his wife Ida)

왼- 영화속 이시도르 부부 / 오- 실제 이시도르 부부

이 부부는 남북전쟁 이후 무일푼인 이시도르 스트라우스가 뉴욕으로 이사를 하면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스트라우스는 자수성가해서 후에 자신의 형과 함께 메이시스(Macy’s)를 공동 인수했으며 능력있는 사업가이자 미국의 하원의원이 되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스트라우스는 구명보트의 빈자리에 탈 것을 제안받았으나 모든 여자와 아이들이 배에서 내릴 때까지 자신은 구명보트에 타지 않을 것이라며 거절했으며 그의 아내 아이다 또한 구명보트를 타지 않고 자신의 남편 스트라우스 곁에 남았다고 합니다. 스트라우스가 구명보트에 탈 것을 재촉하자 아이다는 “우린 오랜 세월 함께 살아왔어요. 당신이 가는 곳에 내가 갑니다(Where you go, I go)”라고 말하며 마지막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아이다는 자신의 하녀에게 구명보트에 탈 것을 명령했고 더 이상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다며 자신의 밍크코트를 줬다고 합니다. 이 부부는 타이타닉호의 갑판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으며 스트라우스의 시신은 발견되었으나 아이다는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4.  광산 재벌 ‘벤자민 구겐하임(Benjamin Guggenheim, mining magnate)’

왼 - 실제 구겐하임 / 오 - 영화속 구겐하임

광산업으로 부를 얻은 벤자민 구겐하임은 자신의 애인인 프랑스의 가수 레온틴 어바트(Léontine Aubart)와 타이타닉 호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그는 레온틴과 하녀를 구명보트에 탑승시킨 다음 자신의 객실로 돌아가 턱시도로  갈아입고 죽는 순간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겼다고 하네요. 그는 “우리는 가장 멋진 예복을 입고 신사답게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5.  브로드웨이의 프로듀서 ‘헨리 B. 해리스(Henry B. Harris, Broadway producer)’

왼 - 해리스 부부 / 오 - 생존한 르네 해리스

해리스는 타이타닉에서 목숨을 잃을 당시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의 주인이었고 유명한 프로듀서였다고 합니다. 그는 1897년부터 연극을 만들었고 배우 관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자신의 아내이자 브로드웨이의 배우였던 르네 해리스와 함께 타이타닉에 탑승했으나 절망적인 재난을 피하지 못했던 브로드웨이의 별입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르네는 타이타닉호의 홀에 있었던 높은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하는데요. 팔꿈치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던 르네를 살리기 위해서 해리스는 그녀를 안아 올려 승무원의 품에 안겨줬다고 합니다. 구명보트를 타고 떠나는 아내의 품에 객실에서부터 가져왔던 담요를 던지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생존한 르네 해리스는 남편의 뒤를 이어 미국 최초의 여성 연극 제작자가 되었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명성을 얻었다고 하네요. 

 

 

 6.  미스터리 작가 ‘자크 푸틀렐(Jacques Futrelle, mystery writer)’

조지아 출신인 그는 뉴욕 헤럴드와 보스턴 포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타이타닉호에서 목숨을 잃기 전 추리소설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푸틀렐과 그의 아내는 배가 침몰하기 전 헨리 해리스(르네 해리스)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일등석의 일류 승객이었지만, 구명보트에 탑승하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아내만 안전하게 태울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 릴리가 기억하는 푸틀렐의 마지막은 배 갑판 위에서  ‘존 제이콥 애스터(John Jacob Astor)와 함께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푸틀렐은 애스터와 함께 마지막 담배를 태우면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7.  미국 대통령 보좌관 ‘아치볼드 버트(Archibald Butt, presidential aide)’

왼 - 태프트 미전대통령 / 중 - 아치볼드 버트 / 오 - 루즈벨트 미전대통령

버트는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목숨을 잃기 전에 다양한 경력을 쌓았던 아주 유능하고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 웹사이트(Arlington National Cemetery’s website)에 따르면 버트는 기자로 시작했으나 이후 스페인과 미국 전쟁 중 미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그는 쿠바와 필리핀에서 복무했으며 이후 1908년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루스벨트의 군사 보좌관이 되었습니다. 또한 27대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의 군사 보좌관 자리 또한 버트가 담당했다고 하는데요.  

 

1912년 루즈벨트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 태프트 사이의 심각한 다툼이 있었는데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중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휴식을 위해서 유럽에서 6주간의 휴가를 가졌다고 합니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타이타닉 호에 탑승했지만 그는 끝내 목숨을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고 하는데요. 남성 승객들이 ‘여성과 아이들 우선’이라는 규정을 무시하고 구명보트에 서로 타려고 하자 자신의 총을 꺼내 들어 여성들과 아이들이 구명보트에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마지막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버트는 배 갑판 위에 서서 존 제이콥 애스터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버트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으며 버트의 장례식에서 루스벨트와 태프트는 추도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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